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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

쉔제드쉔] 어린시절과 첫 임무

-쉔, 이거봐.


제드가 몰래 숨겨둔 가면을 꺼냈다. 이번 연극의 주인공만 쓸 수 있다던 가면은 아니었지만, 가면을 받았다는건 어느 정도의 역할을 맡았다는 뜻이었다. 쉔은 아직 저도 받지 못한 가면을 제드가 받았다는것에 조금 속이 아팠지만 그래도 관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는 자랑스럽게 가면을 쓰고 쉔의 앞을 알짱 댔다.

제드는 아이오니아 최고의 닌자인 쿠쇼의 양자였다. 어떤 사람이 버렸는지 몰라도, 차가운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에 빼액빼액 우는것을 차마 무시하지 못한 여종하나가 데리고 온 아이였다. 당시 핏덩이였던 아들 쉔을 두고 있던 쿠쇼는 그 아이마저 거두어 아들처럼 키웠다.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제드와 쉔이 가장 좋은 파트너로써, 라이벌로써, 그리고 최후에는 아이오니아를 수호할 닌자가 될 거라고 입을 모아서 칭찬했다.

제드는 쉔보다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렇지만 매우 성질이 급하고 불같아 조금이라도 제 눈밖으로 나게 된다면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 예로 제 출신을 무시하고, 제 물건을 함부로 내다버린 시종에게 호되게 화를 내고 욕을 한 일이 있었다. 쉔은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는 제드보다 느렸지만 (물론 일반 수련생에 비해서는 둘다 매우 빠른 속도였다.) 성질이 온유하고 냉철하여 한번 눈밖에 나더라도, 여러번 되짚어보며 진실을 찾는데 애썼다. 그렇기에 쉔은 제드를, 제드는 쉔을 보며 배울점이 많은 상대임에는 틀림없다고 인정하며 자라나고 있던 참이었다.


-한번 나오긴하는데 가면도 받았어.

-잃어버리지 마.


제드는 건성으로 그것을 넘겨듣다가 쉔의 앞에 섰다. 엎치락뒤치락 자라나던 키는 이제 엇비슷한 눈높이를 만들었다. 쉔은 저를 보는 시선을 마다하지 않았고 제드는 조심히 가면을 쉔의 머리에 얹어주곤 해맑게 웃었다. 쉔은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다가도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한번 쳐다보았다. 어엿한 닌자. 쉔은 제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이어른같은 쉔은 크게 기뻐하는 일이 없었다. 제드는 항상 그게 불만이었다. 계집을 데려다줘도 좋아하는 기색 하나없었고 새로운 칼이나 수련을 해준다고해도 그러했다.

 쉔은 아무생각없이 가면을 만지작 거렸다. 탐이 나지 않을수가 없다. 그 자리는 어쩌면 제드가 인정받은것이었고, 저는 아직 미치지 못한 자리였다. 어려서부터 제드와 함께 자라나면서 자신이 앞섰던 적은 단 한번도없었다. 새로운 무술도, 새로운 기술도 모두 제드가 선점한 뒤였다. 쉔은 묵묵히 제드를 따라가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언젠가 그 기술은 모두 쉔도 익히게 될 터였다. 그래서 그렇게 참아왔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제드가 먼저 앞서 달린 것에 대한 보상이 직접 눈앞에 있었다. 쉔은 어째서인지 모르게 불타오르는 마음을 쉽게 가라앉힐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가면을 먼저 제드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쉔은 제드에게 티나지 않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제 머리에 얹어져있던것을 건내주는 쉔을 바라보다 제드는 그대로 가면을 내려 그 위로 입맞춰주었다. 쉔은 그간 지었던 가면같은 얼굴을 박살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드는 가면을 살짝 내려 그 얼굴을 보곤 개구지게 웃었다.


-이런거 좋아해?

-이런거라니.

-계집애들이 말하는데, 이건 특별한 사이만 할수 있댔다?

-야, 이건 남자랑 여자랑 하는거야.

-뭐어때. 우리 정도면 특별하지않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금새 딱딱한 얼굴이 된 쉔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제드는 킬킬 웃으면서 쉔의 볼을 꾹 눌렀다. 어려서부터 함께 커온 나의 분신, 나의 그림자, 나의 형제. 쉔을 위해서, 그리고 이 가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고 다시한번 다짐하던 제드는 쉔의 입술에 다시한번 입술을 마주댔다. 쉔은 인상을 쓰고 제드를 밀어냈다. 그 얼굴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아있어 제드는 재미없다고 징징거렸다. 그러나 생각보다 마인드컨트롤이 잘 되진 않았는지 귓바퀴가 발갛게 달아올라있어 제드는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

.

.


균형의 수호자. 아이오니아의 가장 강력한 힘. 제드는 표창을 휙휙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오늘은 제드와 쉔이 균형의 수호자로서 맞는 첫 임무였다. 각자의 임무를 수행할때와는 다르게, 둘이서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임무였기에 둘은 오래전부터 서로의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아이오니아의 잠재된 세력은 크게 세가지가 있었는데, 균형의 수호자를 제외하면 아이오니아의 의회에서 세 갈래로 나뉘어 지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종종 균형의 수호자들을 불러내곤 했다. 제드는 어쩌면 균형을 맞춘다는것이 그들의 취향에 맞춰 살인이나 하고 다니는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팔다리가 잘려 바닥을 기어다니는 남자를 보면서 쉔은 담담한 얼굴을 했고 제드는 질린 얼굴을 했다. 암기에 능통한 제드가 미리 목을 손봐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의 팔다리에 붙은 근육을 끊어버린 쉔이 그의 최후를 지켜보려 했을때, 제드는 앞서 그의 팔다리를 잘라버렸다. 그것도 일부러 쉔이 손대지 않은 반대쪽으로. 쉔은 그것을 보면서 인상을 썼지만 어둠에 가린 얼굴은 표정을 완벽하게 숨겨주었다.


-임무의 끝은?

-목표를 끌어내리는것.

-....

-이쯤됐으면 알아서 죽을테니, 가자.

-아니.

-뭐?


 제드는 이미 끈적하게 피가 흐르는 표창을 잘 갈무리 한뒤 클로를 꺼내 날을 다듬었다. 평소 클로를 꺼내 연습하는것을 몇번 보았지만 지금 제드는 정말, 진심을 다해 저 사람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쉔은 뭔가 잘못됐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제드의 어깨를 짚었다. 제드는 그 묵직한 손이 제 어깨에 닿아온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채 클로의 날을 갈며 가각가각 소리를 냈다. 사냥감에게 일부러 극한의 공포를 주고 있었다.

 쉔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모든 임무의 끝은 목표가 살아남지 못하도록 살해하는것이다. 그러나 쉔은, 지금 균형의 수호자이기전에 한 사람으로서 상대의 목숨을 거두어 간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균형을 지킨다는 것이 이런 행동으로만 가능한 것인지. 이사람이 진정 아이오니아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지 그 누구도 모르고 있으면서, 무턱대고 살해하라 명령을 내리는것은 아닌지. 이제까지 단 한번도 이런 임무를 맡아본적이 없고, 맡았다고 할지라도 쉔보다 더 높은 기수의 사람들이 (쉔도 엄연한 수련생이었고, 그 기수에 따라서 수호자를 도와 임무에 투입되곤 했다.) 일을 끝내놓곤 했으므로 그는 따지자면 단 한번도 임무때문에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본적 없었다.

 나약하다. 제드는 쉔의 행동에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쉔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이쯤되면 차라리 죽여주는것이 더 온화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쉔은 항상 끝이 애매했다. 제드는 죽이거나, 살리거나. 그말은 곧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중 하나였다. 사실 제드는 훨씬 이전부터 임무의 끝을 내는데 참여해왔기 때문에 이런식의 망설임은 오히려 쉔을 나약하다고 생각하게 했다. 바닥을 기고, 피거품을 뱉어가는 버러지 같은 사내의 머리를 발로 콱 내리찍은 제드는 일부러 클로를 바닥에 툭툭 찍었다. 그의 시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에게 커다란 공포로 다가올것이다. 

 물론 둘다 일반적인 지식은 풍부했다. 어디를 찌르면 아프고, 어디를 찌르면 사람이 죽는지. 모를리가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살아있는 짐승을 향해 칼을 던지고, 활을 쏘고. 그리고 죽어가는 짐승을 산채로 갈라 그 심장을 찌르기까지 했다. 일종의 모의훈련이었다. 보통은 극형에 처해질 죄수들을 들판에 풀어놓고 이리저리 몰아가며 훈련을 했을테지만, 쉔의 아버지는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다며 그런 방법 보다는 차라리 산짐승을 사냥하며 모의훈련을 하는쪽에 찬성했다. 


-제드, 물러나.

-차라리 죽이는게 더 낫지.

-제드.

-쉔, 나는 이 자리에서 균형의 수호를 집행한다.

-...

-균형의 수호를 집행하는데 이의가 있다면,

-...

-너도 그 반역자로 알겠어.


쉔은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니가 못하면 내가 해. 제드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버려진 악귀. 살아있는 야차. 쉔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제드의 모습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반역자로 낙인 찍겠다는 말은 곧 자신의 목숨까지도 거두어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쉔은 두어발짝 뒤로 물러났다. 제드의 무시무시한 말에 어느정도 포기했다. 이번에도 또, 제드가 앞서갔다. 쉔은 자신의 나약함을 탓해야 할지, 아니면 제드의 가차없음을 탓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제드는 클로를 들었다가 정확히 심장쪽으로 내리 찍었다. 그 망설임없고 깔끔한 동작은 마치 검무를 추는 무용수를 보는것 같았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그것을 뽑아든 제드는 다시 한 번 더 망설임 없이 즉사한 남자의 목을 그었다.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쉔은 그것을 차마 볼수 없어 눈을 감았다. 제드는 쉔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둠속에 녹아들기위해서 입은 검은색 잠행복 부분부분이 반짝 빛이 났다. 쉔은 반발짝 옆으로 돌아 길을 터주었고 제드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 방을 나섰다. 이제 곧, 새벽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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