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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

진제드] 빛의 안식처

아이오니아에는 많은 유적지가 있었다. 사실 제드는 그런것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어릴적부터 제드에게 중요했던것은 수련과 힘이었다. 쉔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그의  스승에게 인정받기 위해. 제드는 아련한 어릴적의 기억을 더듬어 가다가 눈동자를 굴려 그의 앞에 펼쳐진 수많은 빛의 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덩어리라고 표현하기에도 조금 애매 하긴 한데, 몽글 몽글하니 저들끼리 붙어있는 작은 빛뭉치들을 표현하기에는 그만한 말이 없었다. 

쉔과 아칼리를 피해 온 이곳은 빛으로 가득한 곳이 었다. 그림자를 다루는 제드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반대되는 성격의 것들만이 가득했지만, 빛은 그림자와 하나이며 또다른 자아라고 제드는 생각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죽고 그림자가 강할수록 빛은 죽는다. 그렇지만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게 된 다면 제드는 몸을 숨길수도, 적을 노릴수도 있었다. 


-오, 제드.

-....?


제드는 이 외진 유적지에 누가 왔을까 싶어 몸을 일으켰다. 빛무리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다 결국 손에 한가득 쥐어 가만히 보던 차였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을까 걱정은 됐지만 마주한 상대는 그런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남자였다. 카다 진이 '속삭임' 을 빙빙 돌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실 '걷는다'라기 보다는 휘적휘적 다리를 움직이는것에 더 가까웠다. 어쨌거나 둘의 거리가 가까워 지고는 있었으니 걷는다는 표현을 쓰는것 뿐이었지만, 진은 다리를 휘적대는것에 가까운것이 사실이었다. 

카다 진은 아이오니아의 절대적인 악이었다. 그 근원이 어딘지조차 짐작할수 없는 깊은 수렁이었다.  일방적으로 아이오니아를 등진 제드와는 다르게,  그는 아이오니아의 모든 것들이 그를 등졌다고 보 는것이 옳았다. 아이오니아는 카다 진을 증오했으나 그는 오히려 아이오니아에 애정어린 관심을 주었다. 애정? 아니, 그것은 증오라고 하는것이 더 옳기도 했다. 

제드는 얼굴을 가렸던 가면을 내렸다. 그의 앞에서는 가면뒤로 숨는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곧 제드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허리를 조금 숙인채 제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젠 반쯤 포기한 제드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가면뒤에 숨겨진 진의 시선과 가면밖으로 드러난 제드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조용히 얽혔던 시선이 풀리고 나서 제드는 한발짝 뒤로 물러났고, 진도 두어발짝 뒤로 물러났다. 제드는 쉔이 따라올까 주위를 둘러보았고, 진은 그런 제드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할말이라도?


진은 과장된몸짓을 하며 제드에게 물었다. 제드는 딱히 할말은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지금 가만히 빛무리들을 보고 있는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드는 다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빛무리들을 만지작 댔다.진은 그런 제드를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제드는 진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그런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 싫어 그냥 포기하고 가만히 그 빛무리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스승을 살해하고 난뒤, 그림자를 받아들인 제드에게 남은것은 무한한 힘과 그림자의 자아였다. 그림자는 시시각각 제드를 조여왔고, 제드는 그런 그림자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이런면을 봤을때 제드의 스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조화라는 것에 한발짝 다가갔다는것이 더 아이러니했다. 스승을 살해한 자가, 끝내는 스승이 강조했던 내용을 이뤄낸 꼴이라니. 제드는 그 생각을 하다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제드.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나?

-아니.

-하,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모를수도 있지, 내가 이런거에 너한테 그런 소리 들어야 하나?


제드는 어이없다는듯이 받아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은 대단히 실망했다는 제스쳐를 했다. 가면뒤의 얼굴이 얼마나 실망스러워 할지 제드는 알수 없었지만 실망스럽다는 제스쳐를 보자마자 어째서인지 열이 바짝 올랐다. 진은 빛무리 하나를 발아래 놓고 살살 굴리기 시작했다. 제드는 안보는척 하면서도 진의 발끝을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진은 천천히 그 빛무리 하나를 굴리다가 발끝에 힘을주어 와작하고 그것을 깨버렸다. 그러자 그 빛무리가 와장창 전구가 깨지듯이 깨지면서 작은 빛무리들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제드는 그것을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발에 닿는대로 빛무리 들을 걷어차면서 수많은 빛무리들이 쏟아져나오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마치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것만 같은 풍경에 제드는 넋을놓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빛들은 한참이나 진의 발아래서 농락당하듯이 우수수 깨졌다가 뭉쳤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드는 그 번쩍번쩍 거리는 것을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유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진은 한바탕 그러더니 몸을 휙 돌려 제드에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제드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네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지.

-뭔데.

-여기는 빛의 안식처. 빛의 유적지란다, 제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는 그림자. 빛이 죽어가는곳에 네가 있기 마련.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있어.

-그러므로 네 무대가 되기에도 아주 적절한 곳이지 않니.


진은 매우 과장된 몸짓을 했다. 제드는 진의 말을 듣다가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웃기만 했다. 그러자 진은 재빠르게 '속삭임'을 꺼내 제드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제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자들 사이로 몸을 숨기려했다. 그러나, 진은 그 억척스러운 손으로 제드의 목을 잡아 졸랐고, 제드는 헉하고 숨이 막혀 얌전히 진에게 붙들려 있어야만 했다. 진은 속삭임의 끝을 제드의 머리에 꾹 내리눌렀다. 제드는 진의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눈을 돌려 진의 가면을 쳐다보았다. 


-나만 가면을 벗고 있는건 정당하지 않지 않아?

-오, 제드. 너는 그냥 내 지시에 맞춰서 춤이나 추련?

-니가 그 망할 지휘자가 됐든 뭐가 됐든 나한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것도 알고있지?

-당연하지. 너무 나도 잘 알고 있단다.


제드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드는 진이 보내는 시선은 단 한번도 피한적이 없었다. 그만큼 당당했고, 숨길것 없었다. 사람의 진심은 눈빛으로 읽을수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이야기 하듯이 제드는 전하는 눈빛 하나에도 진심 하나 담지 않을수 있었다. 진이 자신을 보며 욕정하든, 열망하든, 증오하든.. 그는 그런 진을 상대로 단한번도 피한다는 결론을 내린적이 없었다. 그런 당당한 제드를 보며 진은 손가락에 힘을 줄까 했다가 그의 공연이 빠르게 마무리 되는것은 원하지 않았으므로 제드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제드는 진의 가면끝을 꾹눌렀다가 툭 밀어 올렸다. 얼굴을 가리고도 남는 커다란 가면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제드는 온전히 드러난 진의 얼굴을 보면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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